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문단 편집) == 여담 == * 젊은 시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연상될 정도로, 본인의 절제된 생활 속의 언행일치를 모토로 삼고 이를 실천한 황제였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그를 교육한 스승들과 외할머니 율리아 마이사의 가르침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따라서 알렉산데르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검소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았고, 국가의 공공도덕을 중요시하면서도 이를 황제부터 실천하는 자세로 모범을 보였다. 또한 그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베풀라"라는 문구를, 이를 모든 공공 건물에 새겨넣고 황궁 곳곳에도 이 문구를 새기게 한 뒤 이를 성실히 실천했다. 따라서 여타 로마 황제들과 달리, 매우 관용적이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한 언행으로 로마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 알렉산데르는 전임자 엘라가발루스와 같은 종교적 광기를 무척 경계했고, 로마 제국의 모든 종교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위한 회랑 건립도 고려했고,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을 무작정 탄압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재위기간 내내 그들이 로마시민으로서의 책임만 다해주면 도리어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그들을 존중했다. 즉, 그는 여타 다른 로마황제들과 비교해 다민족 국가인 로마 제국의 다양성을 폭넓게 허용해준 황제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다신교 사제들은 물론,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에게도 관대하고 포용적이라고 칭찬을 받았고, 이 문제로 잡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 로마 병사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줬고, 재위 기간 내내 병사들의 복지 및 처후 개선에도 많이 신경써준 황제였다. 그가 해준 병사들에 대한 인격적 대우나 권리 신장 등을 보면, 그가 암살된 이후 막시미누스를 경험한 병사들이 왜 그를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알렉산데르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절 로마사병의 자녀가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 조치를 보다 전문적으로 강화해, 혼외자들의 재산상속도 인정했다. 또 병사들이 상관에게 재산이 부당하거나 징계를 이유로 강탈당하는 것도 보호해주고 이를 법적 권리로 부여했다. 이외에도 그는 일반 병사와 가족들이 노예를 소유해 거느리고 노예를 해방시킬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처우 개선은 "곱상하고 온화한 귀족" 이미지와 "나약한 겁쟁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켜, 병사들이 황제를 얕잡아보고 황제의 권위가 살지 않은 이유가 됐다. (이 당시 로마 병사들이 좋아하는 부류는 상남자 스타일의 카라칼라 같은 황제였다.) * 후임자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를 시해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는 꽤 악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여자형제 테오클리아의 결혼 문제 때문이었다고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서는 주장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야사이고 이 고대 기록이 허구의 위서 수준이라서 의문이지만 일단 이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장남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와 테오클리아가 약혼 후 결혼식을 올리려고 할 당시, "시아버지가 될 막시미누스가 '''멍청해서 절대 안된다'''. 우리와 격이 다른데, 왜 멍청한 인간의 아들에게 보내느냐"고 크게 반대하면서, 어머니 율리아 마마이아를 설득해 그 결혼을 취소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테오클리아와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의 결혼은 최종무산됐는데, 이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는 테오클리아의 혼처를 다시 구해 오래된 로마 귀족의 자제로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학에 능통한 메살라[* 이 시기 로마 귀족들 중 일부는 먼 조상의 이름이나 오래된 귀족들의 코그노멘도 사용했다. 따라서 풀네임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 메살라라는 귀족 자제가 발레리우스 가문 내의 메살라 가 태생이 맞느냐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추정될 뿐이다.]와 결혼시켰다고 한다. 실제 고대 기록들에 따르면 테오클리아는 218년 황제의 명으로 남편, 시아버지와 함께 시리아 에메사에서 살해됐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따르면 218년 [[마크리누스]]의 명으로 살해됐다고 주장되고 있어 진짜인지 야사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며, 테오클리아와 결혼할 예정이었다는 막시미누스의 장남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의 출생일도 218~220년 사이라서 진짜인지는 아직까지 의문부호가 붙는다. 다만, 테오클리아가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누나로 나이가 많고, 카라칼라 생전부터 여러 명사들과 어울려 두각을 나타낸 것이 사실이라면, 또 이 당시 이들 남매가 세베루스 왕조가 일시 단절되면서 에메사로 사실상 귀양된 점을 생각해보면, 막시미누스 아들과의 파혼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마크리누스의 명에 따라 살해됐다는 주장만은 진실일 수 있다고 한다.[* 테오클리아가 이복누나가 아니라는 반론도 많아, 테오클리아가 누나일 것이라는 주장 역시 신빙성은 의문이다.] 물론 전임 황제이자 [[세베루스 왕조]] 최악의 암군인 [[엘라가발루스]]와는 더한 악연이었는데, 엘라가발루스는 "넌(막시미누스) 장사로 소문이 났던데 그럼 얼마나 많은 여자랑 밤을 지새울 수 있냐?"는 성희롱성 질문을 던져, 그 말에 환멸을 느낀 막시미누스가 잠시 전역을 하고 트라키아에 [[낙향]]할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